[1] 김이선에서 개명.[2] #[3] 그녀 이후에 그녀에게 비교될 수준의 독보적인 원톱의 인기 위상과 대중적 커리어를 만든 여성 댄스 가수를 뽑자면 보아, 이효리정도로 이 외에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외에 각자 나름 신드롬을 만들고 몇년 반짝한 스타가수들이 있지만 장기간 독보적인 톱스타였던 김완선에게 비교할 정도가 안 된다.[4] 컴백 후 출연한 TV프로그램 승승장구에서 G.NA가 즉석에서 한 번 알려준 Black & White 안무를 거의 그대로 따라하면서 댄스의 여왕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때 지나가 허탈해하면서 말하길, "이거 하려고 1주일을 연습했는데..."[5] 이건 기본적으로 1980년대와 H.O.T. 이후 아이돌 세대와의 가요계 분위기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댄스뮤직(혹은 비디오형 가수)이란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한건 1980년대 후반 김완선, 박남정 시대부터이고 기본적인 가창력이 갖춰진 가수한테 비트가 비교적 빠른 곡에 맞춰서 댄스(율동)연습을 시키는 수준이었다. 김완선도 15살부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나름 가창력이 갖춰진 상태였다. 이에 반해 2000년 이후 아이돌 세대는 비주얼과 춤이 되는 연예인 지망생을 뽑아서 노래 연습을 시키는 구조라 이전과는 정반대이다.[6] 게다가 당시 한백희의 '가창'에 대한 지론은 "너무 잘 하면 자꾸 듣고 싶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음을 전반적으로 높게 잡아 녹음시켰다고 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7] 이 노래는 제목처럼 그야말로 충격적인데, 아이유의 3단 고음 못지않은 고음비명이 등장한다.[8] 전영록의 불티도 그렇고 이 당시의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들은 요상하게 공사 현장이 많이 등장한다. 참고로 배경으로 등장하는 공사 현장은 지금의 롯데월드이다.[9] 공사 현장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냥 그 시절이 지금과는 다르게 온 천지가 공사판이었기 때문으로 별 이유는 없다(...) 여의도 개발, 강남개발, 한강종합개발사업, 올림픽경기장과 선수촌아파트 건설, 지하철 3/4호선 등등.... 그리고 한국 TV가 일본 쇼프로 연출을 베끼는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일본 또한 1970년대 후반까지는 "열도개조"라고 해서 온 천지가 공사판이던 시절인지라 TV쇼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다.(심지어 도라에몽이나 내일의 죠 같은 고전 만화에도 보면 공터에 수도관 서너 개쯤은 굴러다닌다. 이런 공사판은 TV 화면으로 찍으면 별도의 무대미술이 필요없을 정도로 적당히 배경이 꾸며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연출자들이 선호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는 김완선의 무대는 일본 TV쇼보다는 당대의 미국 TV쇼 연출기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10] 그리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김완선의 다른 곡은 나왔어도 3집 타이틀곡은 언급되지 않았다. 지못미.[11] 해당 인형이 사실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괴담이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인형을 잘 보면 무게감이 없는 그냥 가벼운 인형 그 자체란 것을 알 수 있다.[12] 당시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어려서 과도한 화장과 복장 등으로 외견 나이를 일부러 올려잡은 감이 있다. 이게 김완선의 영향으로 좀 사라진 이후에 여고생 가수로 다시 등장했던 이지연, 하수빈에 이르러서야 이런 이미지가 약해진다. 초등학생 때 발탁되어서 중학생때 데뷔한 BoA 때 약간 돌아온 감이 있고. [13] 이선희의 전성기는 1984년부터 1990년까지였기에 비교하기는 힘들다. 1990년대 초반에도 인기가 여전하긴 했지만 말이다.[14] 심지어 자기가 키운 가수인 인순이를 버리면서 대놓고 "너는 지는 해고, 완선이는 뜨는 해다"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남겼다고 한다.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이별 따위가 아니라 정말 잔인하게 버린 것이다. 그 말하던 시점에 인순이는 고작 29~30살의 젊은 나이로 못 나가던 시절도 아니었고, 이미 데뷔전 김완선은 인순이의 백댄서였고 친분이 있던 사이였으니 스타였던 인순이가 당했던 배신감에 수치심과 모욕감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김완선이 그녀에게 당한 착취를 생각하면 인순이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었을지도 모른다.[15] 댄스가수에 대한 멸시는 지금보다 그때가 훨씬 더 심했다.[16] 유력한 1위 후보라며 방송에서 불러서 나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 주에는 1위를 못했고 그 다음주인가 다다음주인가에 1위.[17]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김완선은 이전까지는 유독 MBC 10대 가수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1986년 여자 신인상은 누가 같은 MBC 아니랄까봐 강변 가요제 대상곡이었던 <젊음의 노트>를 부른 유미리에게 돌아갔고, 10대 가수 선정이 거의 확실시됐던 1987년에는 조용필이 가요제 사퇴를 선언하면서 10대 가수 선정 없이 가요대제전 형식으로 치뤄졌다.[18] 어린 나이에 특히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가수 활동이었기에 평소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19] 김완선이란 이름에서 완이 끝날 完이란 말을 떠올려 부정적이라는 현지인 충고로 바꾸었다.[20] 실제로는 전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니었다.[21] 그룹 이름은 5마리의 용이 날아다니고 춤추는 동네라는 뜻이라고 한다.(五龍飛舞坊)[22] 2000년에 1980년대 가수들이 합동 앨범을 내고 홍보할 때 잠깐 모습을 비춘 것이 전부[23] 결별 이후 몇몇 인터뷰를 통해 이모와 헤어진 이유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는 아직 한백희가 살아있는 상태라 92년 은퇴의 실상 등 차마 완전히 털어놓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24] 3집의 타이틀곡인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가 가사 때문에 저평가받고 있다. 다른 활동곡이었던 "사랑의 골목길"이 베스트 앨범에 들어간 것만 봐도 뭐. 스스로 낯뜨거운 노래라서 부르기 망설여진다고 한다.[25] 2017년 4월 중순 열렸던 김완선의 첫 단독 콘서트에서 오룡비무방의 쓰디쓴 경험과 함께, 이 노래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등장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김완선의 패착으로 인해 타이틀곡을 잘못 선정해 오룡비무방이 1집 수록곡인 <비밥바 룰라룰라>로 활동하다가 해산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런 가운데 당시 오룡비무방의 앨범에 넣으려고 녹음했던 곡이 있었는데, 끝내 빛을 못 보고 사장되는 게 아까워서 2011년에 김완선 혼자 녹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이 곡이었다는 것. 1997년 당시 이 곡의 작곡가인 이한철은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직후 두 장의 앨범을 냈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뮤지션이었을 뿐이었다. 참고로 오룡비무방은 2000년 안병기 감독의 영화 '가위' ost에 "'White Crow'''라는 팀으로 멤버 일부 교체된 채 음원을 냈다. 예레미멤버이기도 한 조필성 작곡가가 만들어 준 노래가 있었는데, 이게 인연이 되었는 지, 2011년 김완선의 컴백 앨범에 조필성이 참여하기도 하였다.[26] 발매 당시에 반응은 좋긴 좋은데 김완선의 목소리가 반주에 너무 묻힌다는 의견이 대다수 였다. 그래서 음원 사이트에서도 이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댓글이 많았다. 2012년 이후로는 일렉트로닉으로 리믹스한 버전으로만 부르는데, 2011년의 원곡 버전 방송분을 보면 댄서보다 밴드 보컬 같은 모습이 더 강하다.[27] 김완선의 당시 소속사였던 다온마리엔터테인먼트와 신사동호랭이의 소속사였던 AB엔터테인먼트의 합작. 스탭이 AB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28] 불타는 청춘에서 간간히 언급되기로는 동시기 활동했던 가수들마저 그녀와 대화 한 번 못 해봤을 정도로 한백희가 간섭했다고 한다. 이는 한백희가 담당했던 희자매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데, 단 하루 한백희가 쉬었던 날 다른 매니저가 접근해서 인순이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을 빼갔고, 이때문에 김완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 모양.[29] 고 한백희가 김완선의 수익을 가로챈 이유가 바로 상기됐던 남편의 사업빚. 김완선이 벌어오는 돈을 믿고 계속해서 일을 벌리고, 그 사업이 계속 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30] 가수 이장희 원곡. 이장희와는 3집 프로듀싱 작업을 하였다.[31] 1986년에 발표한 '길 바람 아이'로 7080 세대들에게 알려져 있는 가수.[32] 패션이나 컨셉적인 측면에서는 앞서 나미도 있었지만 카메라를 그렇게 강렬하게 쳐다보면서 춤을 그렇게 격하게 추는 건 김완선이 처음이었다.
남편들은 마누라가 가장 무섭다고 한다. 마누라에게 '섹스'를 원한다고 했다가 "쓸데없이 그런 생각만 하느냐, 구제불능"이라고 거절이라도 당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처 받는다. 회사나 집에도 있을 곳이 없어, 술 마시려 가려니 돈이 없고 그래서 혼외 연애, '불륜'을 향하는 게 아닐까. 상대가 '불륜'을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좋아하는데 배신당하면 슬픈 분노가 있다고 한다. '불륜'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부부의 시금석일지도 모른단다. '불륜'을 하는 이유는 결혼은 가정을 만드는 것으로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승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충실감을 얻을 수가 없다. 연애야 말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불륜'은 단지 혼외 연애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돈이 당장 부족하다면 일을 할 수 밖에 없겠지만, 본인이 적당한 돈을 가지고 있다면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유지하고 절약하며 소비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대학교 다니면서 돈 쓸 일이 참 많다. 교통비, 식비, 숙비, 각종 회비, 등록금 등등... 이 많은 액수를 공부하는 학생 신분으로 혼자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 학기 비용만 해도 약 600만원이라고 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월 150만원 수입 가지면서 공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러기가 쉽지 않다. 최저임금으로 150만원을 벌려면 월 160시간 일해야하며,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면 과외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렵다. 사실 과외 받는 학생이 많지도 않아서 더 어렵다.)
중국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이 특별한 종류의 스포츠를 붙잡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적응하고 변화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이민 온 이민자들과 미국에 이민 온 아이들은 여전히 ​​중국 어구를 기억하고 중국 음식을 잡으려고 노력하고있었습니다. 또는 그들의 아버지 나 형제가 가르쳤던 것을 무엇이든간에 매우 단단히 붙잡아 라. 그들은 아무것도 바꾸려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에 대한 토론의 일부입니다. 너는 시대에 적응하고 일을 바꾼다. 중국계 미국인의 얼굴, 결혼 생활, 그리고이 모든 것들. 커뮤니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얼마를 변화 시키며, 전에 그곳에 머물러있는 것이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당신이 붙들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이 왔던 장소에서 스포츠의 기원으로 되돌아가는 연결 감과 조금의 손실 감을 느낍니다.
모래시계 검사 출신인 홍준표 경남지사(이하 경칭 생략)는 검찰을 잘 안다. 그가 “지금 검찰은 딱 한 명의 눈치를 본다”며 “그 사람이 (박근혜를) 구속하라면 구속할 것”이라 했다. 언론은 이 발언을 받아쓰며 ‘그 사람’이라 적고 ‘문재인’이라 읽었다. 검찰이 차기 권력 1순위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때 7시간이나 꼼꼼히 조서를 고쳤다고 한다. 구속은 두려운 모양이다. 지난 한 해를 더듬어 보면 박근혜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에 빠진 느낌이다. 탄핵 때도 헌재가 기각시킬 것이란 거짓 보고에 속았다. 이번에도 주변에서 ‘불구속’ ‘영장 기각’이라 소곤대는 분위기라 한다. 냉정하게 보면 희망고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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